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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회의 학파와 신 플라톤 학파

그리스 로마 철학 - 회의학파, 신 플라톤 학파

 

회의학파

회의학파 (Sceptics) 스토아학파 나 에피쿠로스 학파는 어쨌든 그들의 실천을 위한 이론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이들 양 학파의 철학은 모두 독단론이라 하여 배격하고 도리 어 일체의 이론을 단념함으로써 마음의 평정을 누리려는 것이 회의 학 파이 다. 이 학파의 거두는 퓌론 (Pyrrhon 기원전 360-270 )이다.

 

그는 우리의 지각은 결코 외물 (차 섞)의 진상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어느 시대 어느 장소를 막론하고 승인하지 않을 수없는 보편타당한 진리란 있을 수 없다고 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어떠한 일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단언할 것이 아니라 일체의 판단 중지 (epoche)를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어떤 일에 대해서도 선악과 진위를 가리려면 반드시 타인과 다투게 되어 결국 마음의 평정은 깨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신 프라톤 학파

신 플라톤 학파 (Neo-platonists)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은 난세에 처해서 어떻게 하면 개인의 안심입명을 얻을 수 있는가를 문제 삼는 일종의 처세술에 관한 지혜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불안한 현실 세계에서 도피함으로써 자족의 생활을 누려 보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인생은 투쟁이다"(vivere est militare)라는 구호 아래, 어디까지나 정신력에 의한 내면적인 고투를 통해서 마음의 안주를 피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인간 정신의 승리를 엿볼 수 있다.

 

이제 로마의 세계 통일 이후에는 철학의 경향은 매우 달라진다. 스토아나 에피쿠로스의 처세 학은 로마의 압제에 신음하는 지상의 인간들을 구원하기에는 너무나 무력하였다. 지상 세계에서 완전히 절망 한 인간들은 자기의 무력함을 절실히 느끼고 초월적인 신의 힘에 의해서 구원을 얻으려는 종교적인 경향으로 흐르게 되었다.

 

이 무렵의 대표적인 철학이 플로티노스 (Plotinos 205-270)의 신 플라톤주의 (neo-platonism)이다. 플로티노스는 이집트에서 출생하였고 플라톤, 아리스 토 텔레스의 철학에도 정통하였다. 일찍이 그리스 철학에 의해서 유태교를 해석하고 신학의 체계화를 꾀한 유태인 필론 (Philon 기원전 25- 기원 후 50 )이 있었다. 플로티노스는 그를 계승하여 초월적인 신으로부터 어떻게 이 세계가 생성되었는가를 설명하려고 하였다.

 

그는 신을 '유 일자'(to hen, das Eine)라고 불렀다. 유일자는 무한하며 형태가 없고 어떠한 성질도 붙일 수 없는, 모든 대립과 차별을 초월한 유일 절 대의 실재 ()이다. 만물은 마치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에서 물이 넘쳐흐르듯이, 또한 빛을 발하는 태양에서 광선이 나오듯이, '일자 (-)에서 유출 (emanatio)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일자는 조금도 변함이 없이 원만하고, 증감이 없고, 늘 충족한 채로 있다. 유일자에서 유출은 3 단계로 나누어진다. 마치 빛이 태양에서 흘러나와 점차 멀어질수록 어두워지듯이, 신에서 멀어짐에 따라 점차적으로 신의 완 전성을 잃게 된다. 이리하여 신에서 흘러나오는 3 단계는 이성, 영혼, 물질의 순서이다.

 

이렇듯 만물은 신성 (#)을 띠고 있기 때문에 추악한 자연물에도 불완전하나마 신의 본성이 있다고 하였다. 인간은 이 세 가지 계기를 다 갖춘 소우주 (micro-cosmos)이다. 그런데 악의 근원은 물질에 있다.

 

소수의 뛰어난 사람만이 지적 직관에 의해서 물질적 세계인 육체에 속박된 상태에서 벗어나 신과 합일되는 신비적 경지인 엑스타시스(ekstasis)를 누릴 수 있다. 이 해탈 이야말로 인생의 궁극적 목적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플로티노스의 신비 주의적 사상은 중세의 그리스도 교적 세계관에 큰 영향을 끼쳤다.